2017. 11. 22. 23:57ㆍCulture/Theater/Cinema
Mis-President
무슨 영화?
무슨 영화인가 했다. 뭘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혼란스러울 것 같았음에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오히려 차분하고 냉정해지는 기분이 들게 됐다.
누군가를
누군가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것이 집회든 1인 시위든지 간에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이를 막거나 봉쇄하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해선 안 된다. 천편일률적인 질서, 획일적인 상하관계, 민주주의의 필요악인 다수결의 원칙만을 내세우게 되면 그게 바로 파시즘의 시작이며 허울만 남은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핵이라 불리는 다양성의 인정,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생각, 그것들만큼은 최대한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로 인하여 파생된 것이 자유라는 권리와 사적 자치의 개념인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다양성의 인정이야 말로 다수결이라는 미명하에 피해는 받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생각해 보라. 밥은 먹게 해주겠다는 말로, 경제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탄압되었던 과거 우리의 민주주의를 말이다. 그것은 예전 북에서 김일성이 했던 말과 같은 말이다. 고깃국은 먹게 해주겠다는 그 말 말이다. 그러니 만약 박사모가 원하는 대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염원이 지속이 되었다면, 그랬다면 그들의 옹호와 지지, 집회와 시위는 지금의 이 땅에서 결코 보장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이런 아이러니함을 알긴 알려나...
박정희와 유신 독재가 물러나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발전하였기에 박사모의 태극기와 성조기가 이 땅, 여기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휘날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그리워하고 그토록 슬피 울고있는 걸까.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처럼 그렇게 가선 안 될 곳으로 날아가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있으면서 말이다. 생각이 짧은 건가, 아니면 노예근성이 남아 있는 건가. 역시 이렇게 되면 항상 나는 이 말이 생각난다. '그들은 억압받은 것이 아니라 복종하길 갈망했다'고.
버라이어티
민주주의니 다양성이니 뭐니 했지만, 영화를 보고 있자하면 사람만큼 버라이어티 한 존재도 없는 것 같았다. 많은 인간군상 가운데 이제는 이것이 이상할 것도 더 이상 특이할 것도 없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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