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던트 / The Incident, El Incidente

2017. 1. 12. 15:15Culture/Theater/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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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cident 

 

멕시코 영화 

 

'인시던트'는 '아이작 에즈반' 감독의 멕시코 영화다. ‘부산 국제영화제’ 초청작이었다고는 하는데 그 당시 이 영화에 전혀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던 것을 보아 별 볼일 없는 영화였나 싶어지지만. 사실 감독의 이름도, 영화상의 언어도 낯설긴 하다. 그런데 왜 이제와 이 영화를 찾아 본 걸까. 미리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 영화, 그다지 좋은 영화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영화 리뷰를 쓸 때에는 그 영화의 줄거리를 적지 않으려고 한다. 좋은 영화 리뷰란 줄거리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내 생각 뿐 아니라 평론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리뷰의 기본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도 애매한 것이 이 영화 '인시던트'에서는, 영화상에서 보여주고자 한 그 어떠한 메시지나 또는 방향성의 제시조차도 전무한 편인지라 마땅히 이야기 할 건더기가 없어 보인다. 아니라고 해도 끽해봐야 진행에 필요했던 장치 정도를 이야기 하고 끝내면 될 정도로 별 내용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이 영화의 자질구레한 부분까지도 파헤쳐 보려고 한다. 그래야 이야기를 제대로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할머니 

 

영화 '인시던트'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에스컬레이터에 누워 있는 왠 할머니의 등장으로 막을 연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표정이 압권이다. 마치 영화 '마터스'의 마지막 장면 같기도 하고.

 

 

동일인물

 

과거를 떠올리는 듯 하는 할머니의 표정 뒤, 어느 신혼부부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여기에 등장하는 젊은 신부가 바로 누워 있던 할머니의 과거다. 할머니와 신부는 동일인물인 것이다.

 

(귀고리 보면 알겠지 ?)

 

이게 뭘까? 

 

첫 장면에 나온 그 할머니의 표정은 사실 이 호텔에 갇혀 임종을 맞이하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다음 장면에 나온 신혼부부는 그 곳에 갇혀 늙어 죽었다는 말이 된다. 이게 뭘까?

 

제목에 모든게 담겨 있다 

 

'incident'는 사건, 사고를 뜻하는 단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우리네 인생에서 수 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사고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런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휴~ 큰일 날 뻔 했네"라고 말 한적 있는가? 만약에 그런 때를 떠 올릴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벌써 끝이 나버린 셈이다. 그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 사고 직전에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진 상태로 현실과 쪼개져, 또 다른 내가 그곳에 갇혀 그런 결과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영화에 나타난 표현인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이렇게 말하면 되겠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물 컵을 떨어뜨려 보아라. 다행히 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지 되어진 다른 곳의 또 다른 내가 깨어진 물 컵을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으로 현실의 나는 "휴~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그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일상의 세계를 살아간다는 설정을 영화는 이렇게 베베 꼬아 늘어놓고만 있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렇게 말하면 갇힌 그들은 현실 속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스페어 인생이 된다는 말이다. 허나 영화는 여기에 더 많은 것을 갖다 붙였다. 솔직히 이 부분이 영화 '인시던트'의 재미있는 부분인 것을 부정 할 수 없어 보인다.

 

 

영화의 초반 

 

영화의 초반에 나온 신혼부부 중 신랑은 영화의 끝자락에서 다시 보면 뜬금없이 벌침에 손이 쏘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남자는 벌침 알러지가 있었다. 바로 여기 이 순간에서 '인시던트'가 일어 난 것이다. 정지된 시간과 공간에서 그 남자는 죽고 신부는 평생 그 곳에 갇혀 있음으로 현실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다행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문제의 그 벌을 가지고 온 사람의 정체이다. 그 호텔 벨 보이는 고의로 가방을 떨어뜨려 알러지 진정제를 깨뜨려 부수고 만다. 게다가 더 웃긴 게 이 호텔 벨 보이의 정체란 그 신혼 부부 미래의 손자였다는 것이었다.

 

이게 또 뭘까. 결국 이 신혼부부를 현실과 쪼개어내 가둠으로 그들의 삶을 스페어 해준 것은, 바로 미래에 태어 날 그들의 손자였다는 말이다. 이 부분이 약간 소름 돋는 부분이었지만. (사실 더 소름 돋는 부분은 이 이후에 있을, 하지만 영화 상에 보여 주지 않은 근친상간이라는 문제이다. 이는 영화상에서 가장 끝에서야 나타나지만)

 

 

그리하여

 

그리하여 이 손자는 태어나게 되었고 일상의 삶을 무리 없이 영위해 가는 일만 남은 것 같았지만, 이 손자에게 또 다른 '인시던트'가 일어나 버리고 만다. 정확하게 말해 이 손자의 형이 계단에서 다리에 총을 맞은 것이다. 그리곤 역시 이 일은 현실과 분리되어 정지 돼버린다.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 바로 "쿵"하며 진동하는 것으로 영화상에 나타난다.

 

형사

 

여기서 더욱 관객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형사'의 등장이다. 알고 보면 '형사'의 입장에서도 도망가던 형제에게 총을 쏘았던 것 역시 '인시던트'의 발생이었다. 즉, '형사'와 '형제' 두개의 '인시던트'가 정지되어 교집합이 돼버렸다는 말이다.

 

 

불친절

 

물론 이렇게 말하면 설정의 구멍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부정 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인터넷 상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이 영화의 해석이란 제목의 글들은 자신들도 무슨 말을 하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한 체 자랑스럽게 끄적여 논 횡설수설들 뿐이다.

 

게다가 여기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또 어떻게 할 건데 싶다. 정말 짜증날 정도로 형편없는 연기와 연출력이었다. 아무리 설명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여도 사람의 행동에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정신병자의 발버둥이든 뭐든지 간에 말이다. 이점이 바로 관객에게 필요한 영화의 배려였다. 인물들의 행동에 관객들이 수긍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이 영화는 이런 점에서 전혀 친절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중반으로

 

영화는 중반으로 달리며 교집합 되어버린 '형사'의 이야기를 때내어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뚱땡이 아저씨’와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어린 여동생’과 같이 여행을 떠나는 도중에 있던 '꼬맹이 형사'는 천식이 있는 ‘여동생’의 예비 호흡기를 챙기지 못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원인을 제공한 것은 그가 아닌 ‘뚱땡이 아저씨’였고, 하나 있던 호흡기를 발로 밟아 부셔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또 다시 ‘뚱땡이 아저씨’와 ‘꼬맹이 형사’에게 '인시던트' 그러니까 정지되어 분리된 삶의 스페어가 일어난다.

 

반대로

 

반대로 여동생의 호흡곤란을 무사히 넘겨 다행이라고 넘긴 현실에서의 ‘꼬맹이’는 이후 ‘형사’가 되어 있었고 앞서 말한 할머니의 '손자'들과 총기사고로 인해 또 다시 '인시던트'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기로에서 저질러 버린 실수나 사고는 한 번만 스페어 되는 걸로 영화에서 나타난다. 이후 ‘형사’는 현실에서 자신의 아내가 저지른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불륜 남을 총으로 쏘아 죽여 버리지만 삶의 스페어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뚱땡이 아저씨’도 ‘꼬맹이 형사’의 ‘어머니’와 헤어져 술에 찌들어 살아가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지만 역시 삶의 스페어는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뚱땡이 아저씨’

 

‘뚱땡이 아저씨’는 어릴 적 뗏목을 타고 가다가 같이 탄 학교선생의 실수로 다른 친구를 물에 빠뜨리고 머리를 다치게 해버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학교 선생에게 '인시던트'가 일어 나버리고 그 뗏목은 정지된 시간 속에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수십 년을 표류하게 되고 말았다. 이는 학교 선생의 '인시던트'인 것이지 어릴 적 '뚱땡이 아저씨'의 것은 아니었다.

 

기억

 

타인의 '인시던트'에 교집합이 되었던 사람은 현실에서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는 가상의 세계를 본인의 '인시던트'에서 죽기 전 기억해 내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게 참 말조차도 웃긴 부분이긴 하지만. 그러니 ‘뚱땡이 아저씨’는 꼬맹이 때의 기억을 잊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인시던트'에 빠져 죽기 전에 다른 나 자신의 기억을 주입받은 식이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실 

 

사실 이렇게 보면 '인시던트'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누구인가가 제대로 정리가 되어 지지 않는다. 인생에서 단 한번 삶의 스페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치면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인시던트'를 일으킨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손주’인가? ‘할머니’인가? 이 역시 설정의 구멍이다.

 

하지만 두 사람씩 두개의 '인시던트'가 교집합 되어진 설정을 거기서 또 한번 교차 진행하여 보여준 영화의 표현력은 사실 꽤나 좋았다.

 

결론

 

허나 결론을 말하자면 약간이나마 시간 아까운 영화였음은 부정 할 수 없는 듯하다. 그 3명의 사람들 중 해피엔딩을 맞이한 사람은 현실에서의 손자 형제 중 ‘동생’뿐이라는 점에서 허탈감이 느껴진다. 허탈감을 이유로 들자면 오히려 이 영화가 잘 만들어 졌음을 인정해줘야 돼버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어이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래나 저래나 남은 사람들은 정말 어쩔꺼냐. 이건 뭐 선의의 희생자도 아니고 말이다. 대충대충 얼렁뚱땅 무책임한 영화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마지막에 와서 다시 스친다. 그럭저럭 재미는 있다만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끝 

 

자꾸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그만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야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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