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4. 15:57ㆍMovie vs Movie
Sing Street vs Almost Famous
싱 스트리트
영화 [싱 스트리트]. 2016. 05. 19 개봉한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다. 그렇다. [비긴 어게인] [원스]의 바로 그 감독 '존 카니'다. 기대되는가? 그렇다면 실망 할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건 그냥 개떡 같은 영화다. 아무리 음악 영화라 해도 이건 너무 심하게 아무런 내용이 없다. 애초에 저예산 잡고 독립영화 수준으로 만든 영화라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좋으냐하면 그도 아니다. 좋다, 백발 양보해서 하나 정도 건질만한 노래는 있다. 근데 그게 전부다.
올모스트 페이머스
그에 비해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음악 영화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감독 '카메론 크로우'의 2000년 작, 그러니까 16년 전의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사실 이 영화를 아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괜찮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무언가 향수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팝과 락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락음악을 중심으로 잡았다면 [싱 스트리트]는 누가 뭐래도 팝음악이다. 그런면에서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올드하다. 영화의 배경도 역시 올드하다. 락의 전성기, 그 시절의 이야기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음악에 공감대가 형성 되는 관객이라면 분명 올드해 가고 있는 연령대가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싱 스트리트]는 쏘~영 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깜직하고 발랄하다. 지금의 세대가 공감하기에 훨씬 좋은 영화가 싱 스트리트일 것이다.
복고
그렇다고 [싱 스트리트]가 무작정 쏘~영 한 것만은 아니다. 영화가 잡은 컨셉이 '복고풍'이기 때문이다. 올드하다든지 복고풍이라든지 하는 두 영화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나 복고에 관한 [싱 스트리트]의 시각적인 면은 굉장히 감각적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노래를 부를 때 마다, 마치 하나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이것을 감독 '존 카니'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 해놓고서, 그것을 그대로 재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 [싱 스트리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의도된 영상미와 패션 감각을 복고풍으로 자연스레 표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청춘 드라마
[올모스트 페이머스]와 [싱 스트리트], 두 영화는 음악이 전부라고 말하긴 힘든 영화다. 둘 다 어느 정도 청춘 드라마에 오히려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주인공 '윌리암 밀러'에서는 '열정'이란 촉진제로, [싱 스트리트]의 주인공 '코너'에서는 '사랑'이란 매개체로 그 청춘의 성장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올모스트 페이머스]다. 영화 [싱 스트리트]는 여기에도 정말 답이 없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청춘의 미화는 한마디로 거지같다. 그냥 밑도 끝도 없다.
방향성
또한 주인공을 가로막는 그 무엇에 대한 반항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과 그 해결을 음악적인 방향성으로 풀어 가고 있다는 점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보여준 '윌리암 밀러'의 반항은 먼저 그의 누이에게서 시작한다. 이는 부모님과의 갈등이다. '윌리암 밀러'의 누이가 집을 떠나면서 동생에게 전해준 탈출구는 그녀가 평소 즐겨 듣던 락음악에 있었다. 이후 '윌리암 밀러'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가로막는 부모님과의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스스로가 타개책을 제시해 간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 속에서도 정직하고 당당하게 전진해 나가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마구잡이
그에 비해 [싱 스트리트]의 주인공 '코너'는 엉망진창인 가정사에 밀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또한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들에 대해 웅크리고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그런 환경에서도 용케 자신 보다 나이가 더 많은 미모의 여인에게 대책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들이대곤 한다. 그리고 그 헌팅에 성공하기 위해 밴드활동이란 거짓말을 꾸며내기 시작하는데, 이런 (上)병신이 주인공이라고 아무 이유 없이 잘나가게 된다면 이딴 영화는 분명 쓰레기 처분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공감대 자체가 전무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조력자
다른 공통점은 주인공들을 향한 두 영화 속 형제, 남매의 역할에 있다. 이들은 두 영화에서 어린 동생이라는 주인공들의 정서적인 측면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결국 음악적 방향성의 제시, 그것이 이들 두 영화에 속한 주인공들의 방향성이며 그러한 조력자들의 주인공을 향한 대사 자체가 이들 영화에서 전하고자한 메세지 전달 그 자체이자 영화의 진행을 위한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윌리암 밀러’에겐 누나가 집을 떠난 후 한물간 음악 평론가인 ‘레스터 뱅스‘라는 더 큰 조력자가 등장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윌리암 밀러‘의 어머니는 보수적인 인물로 주인공의 행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자리 잡는 듯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 록 ’윌리암 밀러‘의 조력자로 변해간다. 역시나 그에 비해 영화 [싱 스트리트]에는 아무런 존재도 없다. 허무맹랑하다.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너무나도 부족한 꼴이다.
방향성
그리고 두 영화는 방향성의 제시에서 명확한 차이가 나타난다. 벽처럼 자신을 막고 있는, 그리고 좌절케 하는 그 무언가를 뛰어넘기 위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먼저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는 부모님간의 갈등, 학교 교장 선생님과의 갈등, 자신을 괴롭히는 학우와의 갈등, 꿈을 향한 더 큰 세계로의 갈등 등 주인공 '코너'를 답답하게 가로막고 억압하고 있는 이 모든 대상을 넘어 서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을 향한 반항심, 오로지 이것만을 타개책으로 제시 해주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반항의 끝에 주인공 ‘코너’는 배를 타고 이들로 부터 멀리 도망 치고 마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의지나 시도도 없이 말이다. 여기서 영화는 그저 환경 탓만 하고 있는 꼴이 돼버렸다. 그래도 주인공 '코너'와 그의 여자는 비가 내리고 파도가 치고 거대한 선박이 자신을 막아서는 모습에서도 신이 난 듯 뱃길을 돌리지 않는다. '멈추지 말고 네 인생을 위해서 달려가라' 라는 대충 그럴싸한 청춘의 거짓 미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저 대는 대로 반항하고 그저 대는 대로 도망쳐라'고 영화 [싱 스트리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청춘의 특권이라는 식으로 포장 되어진 체로 말이다. 아, 진짜 아무리 좋게 말 하려고 해도,,, 이 뭐 진짜 거지같은 게,,,
진실함
그에 비해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넘기 위해 오직 진실할 것만을 강조한다. 영화가 보여준 나아가기 위한 해답이란 바로 변치 않는 진실함이었다. 바로 이점이 영화 전반에 걸쳐 내내 묘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어른들의 세상을 향한, 마치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 하는 시선으로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다시 묻게 된다. 그러한 점은 영화의 후반부 굉장히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바로 이점이 영화 [올머스트 페이머스]의 볼거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내면을 그려내기 위에 영화 [올머스트 페이머스]는 무엇을 택하였는가. 이 영화는 그러한 소재로 록큰롤을 택했던 것이다. 주인공 ‘윌리엄’의 가장 큰 조력자인 ‘레스터 뱅스’는 영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록큰롤 시대를 놓친 게 안됐지만, 끝났거든. 넌 지금 록큰롤이 죽음의 몸부림을 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야. 마지막 헐떡거림과... 마지막 더듬기..." 영화는 후반 ‘레니 페인’의 막이 내린 콘서트 장에서 홀로 추는 춤사위를 통해 이것을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다시 말해 주었다.
내면의 모습
그리고 영화 속 이 장면은 애처로운 듯 조용하면서도 너무나 강렬하게 보여 진다. 막이 내린 무대, 그 후의 화려한 겉모습에 감추어진 텅 빈 쓰레기 더미 속 내면의 모습을 보고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여기서부터 그전까지 보여준 화려하고 멋진 겉모습이 아닌 그 이면에 있던 더럽고 추한 내면의 것들을 뱉어 내기 시작한다. 반전의 분수령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를 ‘레스터 뱅스’는 영화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록큰롤을 파괴하고 그 진수를 말려 죽일 거야. 바보 같은 팬들로부터 우상화 되고 인기를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야." 영화가 비유적으로 보여준 그 록큰롤의 진수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케이트 허드슨'이 열연한 '페니 레인'이었다. 결국 '페니 레인'은 내면의 추한 그 무엇을 뱉어내야만 했다.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는 이를 또 기가 막히게 연출해 낸다.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절대적으로 놓칠 수 없는 이 장면에서,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그 무엇이 담겨 있었다.
여하튼 여기에 더해서 ‘레스터’는 결국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대사를 날려버린다. "네가 올바른 명성을 쌓으려면 정직함과 잔인함이 필요해"
인터뷰
그렇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정직할 것과 그에 필요한 내면의 단호함, 즉 잔인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그 내면을 파고들어가는 것이 밴드 ‘스틸 워터’를 향한 주인공 ‘윌리엄의 인터뷰’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스틸 워터' 이들은 내면의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터뷰를 피하는 것이었다.
해결의 제시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는 오직 반항만하고 도망만 치라고 말한 것에 비해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그 해결을 보다 더 진솔하고 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화해였다. 마지막 그토록 입을 다물고 인터뷰를 거절하던 ‘스틸 워터’의 기타리스트 ‘러셀’에게서 주인공 ‘윌리엄’을 향한 진실한 사과를 보여주며, 영화는 긴 여운을 남긴 체 막을 내리고 만다.
진짜와 가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음악 영화 주제에 말이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밴드 ‘스틸 워터’는 가짜다. 영화를 위한 프로젝트 밴드 일 뿐이다. 노래가 좋다고 찾아봐도 이들의 앨범은 없다.
줄이며
마지막으로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O.S.T 모음이자 이 영화의 매인 밴드 '스틸 워터'의 노래들로 이만 글을 줄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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