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부산비엔날레 : Project 2 고려제강 수영공장

2016. 10. 9. 03:05Culture/Theater/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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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부산비엔날레

 

Project 2 고려제강 수영공장

 

 

오전부터

 

오전부터 비가 추적추적 왔다. 전시회를 구경 가기엔 참 좋지 못한 날씨였다. 그래도 갔다 왔다. 여기가 어딘가 싶었는데 네비게이션이 코스트코를 가리키기에 옳거니 하고 시키는 대로 곧장 찾아갔다. 뭐, 빙글빙글 돌아가긴 했지만. 고려제강 수영공장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코스트코 옆 주차장이 있는데 거기서 3시간 무료로 주차공간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물론 도장 따위를 받아 나와야만 한다.

 

[고려제강 수영공장 지도 ]

 

고려제강 수영공장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열린 2016 부산비엔날레 Project 2는 저번 주에 다녀 온 부산 시립미술관의 Project 1에 비하면 그나마 훨씬 좋았다. 일단 볼거리가 더 풍성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더 좋았던 점이 부산 시립미술관은 공간의 배치가 2층 3층, 위아래로 분리 되어있어 산만했던 이동 과정에 비해, 고려제강수영공장의 전시장은 1층 단편으로 구성 되어있고 복도식의 건물 내부에 따라 순차적으로 둘러 볼 수 있었으며, 각각의 작가에 따른 작품들마다 공간이 분명히 나뉘어져 있어 천천히 걸으며 느긋하게 관람하면서도 관람의 흐름을 맺고 끊기에 용이했다는 것이다

 

[고려제강 수영공장 입구 ]

 

<Operation Harmony>

 

관람에 들어선 나는 시작부터 '시시하겠지'라는 나의 예상을 깨는 먼가에 눈이 꽂혀버렸다. 이게 뭐라고 설명이 안 된다. 무언가 감감한 듯 한 기분에 어쩔 수 없어 손에 든 해설을 읽어보았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Operation Harmony>의 핑크색 틀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서 가져온 단편일 수도 있고, 유인원 타워는 ‘나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마라’는 윤리에 대한 어떤 시도일 수도 있다"란 개소리를 해설이라고 달아 놓았으니. 아니, 이게 뭔 말인데? 미친다. 차라리 안 읽는 게 더 도움이 됐으리라.

 

[폴케르트 드 융, <Operation Harmony>, 스티로폼, 유색 우레탄폼, 진주, 340x700x230cm, 2008]

 

아야 벤 론

다음으로 곧장 눈에 박혀버린 게 '아야 벤 론'이란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병원인데,, 간호사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표정에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있고. 뭐지?' 이런 생각이 드니 참 괴기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작품 자체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부드러움은,,, 역시나 또 다시 나를 감감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야 벤 론, <Sisters 1-3>, 합판에 혼합재료, 세폭제단화, 240x113.5x10cm each, 2010 ⓒ AANDO FINE ART, Berlin]

 

<Still-Life>

 

두 번째 사진인 <Still-Life>라는 작품은 제목을 보지 않아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생명연장'이라,,, 그런데 여기서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분명히 고통이 아닌 웃음, 코미디가 느껴진다. 요즘 내가 사이코패스가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죽음과 고통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병에 대한 미화나 감성적인 개입을 찾아볼 수 없다. 아야 벤 론은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고 냉엄한 유머로 의료 절차를 최대의 사회사적 연장선상에서 탐구하고 있다"고 적혀있는 해설을 읽고 나니 아득했던 생각이 확 밝아져 버렸다. 그렇다, 내가 느낀 감정과 맞아 떨어지니 말이다. 다행이도 제대로 감상하긴 했구나 싶은 순간이었지만, 결론이 없다. '그래서? 그래서 다음은?' 갸우뚱해져 버린다. 그게 전부라면 너무나 가볍다.

 

[아야 벤 론, <Still-Life>, 판지, 합판, 음향, 72cm height, 90cm diameter, 2009    ⓒ AANDO FINE ART, Berlin]

 

[리나 칼랏, <Hyphenated lives>, 혼합재료, 2016 ]

 

리나 칼랏

 

다음은 '리나 칼랏'의 작품들이 너무나 좋았다. 전기적인 결합 말이다. 그래서 "자연에서 발생하는 환상적인 돌연변이 과정을 재구성한 것으로, 국가를 상징하는 여러 종의 새, 동물, 나무, 꽃을 새롭게 교배시켜 국가 간 갈등을 하이픈을 사용하여 상징적으로 결합 한다"라는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말이 쉽게 이해되어져 버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내가 웃기긴 하다. 미술작품들을 글자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가장 멍청한 감상을 하고 있는 나를 여기서 드디어 발견했다. 하하. 그리고 더 이상 해설을 읽지 않으려 다짐 했다. 하지만...

 

여하튼

 

여하튼 개인적으로 거기서 '리나 칼랏'의 <Hyphenated lives> 중 아래 두 번째 사진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지도를 연결해 놓은 전기 와이어, 결합 말이다. 종이 지도 위에 기워놓은 듯한 전기선들을 보고 다시 생각했다. '지도가 미술이 된다면 글자도 미술이 될 수 있지 않나?' '흠... 당연하지' '그럼 나눠 받은 팸플릿의 해설구가 그 자체로써 미술작품이 될 수 있으려나?'

 

'?'

 

지도

 

지도가 이렇게 너무나 간단하게 작품의 소재로 쓰였으나, 이런 사상적 결합을 먼저 생각하고 의도한 것이 지도를 이용한 소재라니, 그것이 대단한 점이겠지 싶었다. 그리고 저 지도는 이스라엘을 낀 중동지역을 보여주고 있다. 하아.

 

[리나 칼랏, <Hyphenated lives>, 혼합재료 ] 

(하지만 전선이 팔레스타인을 거치지는 않고 있다. 이건 문제다)

 

<2002년 6월 20일>

 

<2002년 6월 20일> 이 작품도 좋았다. 홀로, 작아진, 남겨진, 멀어진 '나'를 표현했으리라. 그런 '나'를 내가 도울 수 있으려나?

 

[쩡하오, <2002년 6월 20일>, 유화,73x60cm, 2002]

 

엑스레이 따위

 

엑스레이 따위의 투시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들어 낸 작품이다. 난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 뭘 쓰고 있었던 걸까 궁금하다. 

 

[자비에르 루체시, <Unnamed>, 의학용 스캐너를 이용한 람다프린트, 150x150cm, 2011 ]

 

[ 윤필남, <손에서 손 끝으로>,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6]

 

<Enclosure>

 

<Enclosure> 이게 또 골 때리는 작품이다. 만드는데 애를 쓴 건 알겠다. 그럴싸해 보이는 것도 딱 보는 순간 느껴진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에 자신의 사상을 담아야만 한다. 이것저것 마구 섞이게 되면 아무것도 읽혀지지 않는 법이다. (이건 해설을 읽어버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거 계속 보고 있으면 무서워진다. 안을 보든 밖을 보든 말이다.

 

[손정희, <Enclosure>, 도자기, 조각, 설치, 550x300x300cm, 2016 ]

 

<Rose Garden>

 

<Rose Garden>처럼 이렇듯 전시회 사이사이엔 블라인드 구조물 안에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Rose Garden> 이것도 참 어처구니없이 난해한 영화다. 입구 앞에는 버젓이 19금딱지 까지 붙여있다. 아쉬운 게 이걸 제대로 기다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올 껄 싶다는 것이었다. 식당에서 그냥 아무이유 없이 총질을 해대는데 그 곳에서 언놈이 음란전화(폰섹스)를 하고 있다는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했다. 그런 음담패설이 이 영화의 주 대사였고 말이다. 그런데 감독은 뭘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 캐런 시터, <Rose Garden>, 비디오, 8'57", 2014  ⓒ Courtesy of the artist and Pilar Corrias Gallery, London]  

 

[송기철, <이미 여기에 늘 평화롭게 존재한다.>,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6 ]

 (저 녹슨 철문, 추억 돋는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래 사진의 저 구체에 먹물이 흐른다. 가까이가면 옷에 묻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까지 주어진다. 그리고 저 구체 표면에는 전동 와이퍼가 쉴 세 없이 움직이고 있다. 누군가 내게 한 말은 ‘지구의 오염 문제를 담아낸 작품’이란 것이었다.

 

맞다. 정말이다. 번득였다. 천재다. 아무리 다시 봐도 그렇다. 그것 밖에 없어 보인다.

 

만약 그게 아니라 진짜 제목처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관한 그 뭣 모를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이라 한다면 너무나도 허접한 결과물만 남게 된 꼴이다. 표현의 주고받음이란 문화에서 이렇듯 관객과 단절된 작가의 허공 속의 메아리가 존재한다. 이건 작가의 표현력이 쓰레기일 뿐이란 말이다. 저번에 미리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다시 말해보자면, 내가 작가라고 그냥 되는대로 내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사진 찍어 놓으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 그게 미술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먼가가 담겨 있어야만하고 그걸 대다수의 누군가가 수긍 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사람들이 알 수 없어 하는 미지의 것이라면 무조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건 괜히 있어 보이려는 헛수작일 뿐이다. 우습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문화의 한 장르에 속한 미술이란 장르에서는 주는 입장만이 주가 되지 아니하단 점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현대미술에 속한 미술가들이 가지지 못하고 있는 생각이겠지 싶어진다. 마치 이런 작품들은 "니네가 알 수 있겠어? 풉"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닌가 그래 또 한번 볼까?

 

[ 저우원도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스테인리스 강철, 전동 와이퍼, 먹, 300x500x500cm, 2015 ]

 

“작가는 이러한 기계적인 동작을 통해 현재 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현대인의 비 자동제어적 성격과 지나치게 반복적인 행위와 습관을 넌지시 암시한다. 또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기계적으로 소식을 제조하는 인터넷 시대와 점차 주의력 결핍으로 둔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 한다”라고 부산 비엔날레 홈피에 딱하고 작품해석을 달아 놓고 있다.

 

위 사진, 실제 저기서 저 작품만을 보고 저런 말을 가슴으로 느끼거나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겠는가. 시인은 다른 것이 아닌 시로써 말하는 법이고, 감독은 다른 것이 아닌 영화로써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법이다. 그 외의 것은 곁가지다. 주가 아닌 것이다. 미술에서는 미술작품이 주가 된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사상을 단편적이나마 느낄 수 없다면 이건 내가 무식하고 멍청해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바로 너, 작가의 한계, 표현능력의 한계인 것이다.

 

이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이란 제목조차 작품과의 연관성을 느낄 수가 없는 정도다. 저딴 것이 저기서 알 수 없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지만, 다행이도 그 안에 새로운 것을 발견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이 미술이라는 허명아래 놓인 쓰레기를 위한 재창조라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점이 문화예술에 속한 차원 높은 특징일 것이다. 그러니 너! '저우원도우', 내게 저 말을 한 누군가에게 분명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숨이 턱!

 

그리고 위의 작품까지 딱 오게 되면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공기가 탁하다. 관람이고 뭐고 그냥 빨리 지나가기 바빴다. 심각할 정도의 문제였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았던 것인가?

 

먹거리

 

뭐 대충 쓴다고 써도 끝이 없는 듯하다.

아참,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먹거리 문제다. 나가면 아무것도 없다. 고려제강 수영공장에는 안에서 간단한 요기를 해결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적극 이용하는 것이 속편할 것이다. 코스트코 이ㅅㄲ들은 '호구'카드 없으면 아예 입구에서부터 차단해 주신다. 진짜 미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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