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4. 01:44ㆍFigure/History/Case
존 폴 게티 납치사건
1973년
1973년 16세 ‘존 폴 게티 3세’는 ‘은드랑게타’(Ndrangheta)라는 이탈리아의 범죄 단체에 의해 납치를 당하게 된다.
은드랑게타
칼라브리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은드랑게타’는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으로 알려져, 70년대에는 납치를 통해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이를 모방한 범죄가 이탈리아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랬기에 ‘은드랑게타'의 범죄로 불러들이는 연간 수입액은 5~600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이탈리아 GDP의 3.5%나 차지하는 수치였다고 한다.
갑부
여하튼 세계 최고 갑부 중 한 명이었던 석유 재벌 ‘존 폴 게티’의 손자 ‘존 폴 게티 3세’는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나 어렸을 적부터 히피 생활을 즐겨왔으며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고 하는데, 16세의 그는 이러한 생활들이 범죄단체에 표적이 되어 납치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튿날
실종 된지 이틀째 되던 날 그의 어머니는 ‘은드랑게타‘에게 17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녀는 당시 ’존 폴 게티 2세‘와 이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만한 돈이 없고 항변했으나, 납치범들은 할아버지에게든 그의 아버지에게든 몸값을 받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즉시 ‘존 폴 게티’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당시 ‘존 폴 게티’는 손자가 다른 무리들과 함께 자작극을 벌이는 것이라며 별일 아닌 듯이 취급했다고 한다.
이건 아니잖아
결국 ‘존 폴 게티 3세’는 4개월 동안 칼라브리안 산 동굴에 갇힌 상태로 ‘은드랑게타’ 조직원들에게 구타와 고문을 당하게 된다.
사실
사실 그의 아버지 ‘존 폴 게티 2세’는 고작 월 100달러를 받으며 게티 오일 컴퍼니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때문에 그가 납치범에게 줄 돈이 없어 그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존 폴 게티’는 자신에겐 14명의 손주들이 있는데 한명이 납치됐다고 돈을 준다면 나머지 13명의 손주들도 납치의 타겟이 될 우려가 있다며 도움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는 억만장자인 ‘존 폴 게티’가 돈이 아까워 그러했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었다. 그가 얼마나 지독한 구두쇠였는지, 자신의 집을 찾아온 가족이나 친구들이 사용 할 동전을 넣어야 걸 수 있는 유료 전화기를 저택에 설치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도 아니잖아
납치범은 "억만장자가 돈이 없어 몸값을 지불 못한다니 우리를 놀리는 것"이라며 ‘존 폴 게티 3세’의 한쪽 귀를 잘라 우편으로 보내 버렸다. 그리고 몸값을 낮추어 32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만약 열흘 안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존 폴 게티 3세’의 몸 어딘가를 더 자르겠다는 협박편지도 함께 말이다.
이게 사람이냐
아들의 잘린 귀를 받아들고 다급해진 ‘존 폴 게티 2세’가 몸값을 빌려주면 연 4%의 이자를 쳐서 나중에 돌려주겠다며 통사정을 했을 때에야, 손자의 잘린 귀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존 폴 게티’는 직접 몸값 협상에 나서 그나마도 50만 달러를 깎아 현금 20억 리라(270만 달러)를 납치범들게 주어 이탈리아 남부의 한 고속도로에 ‘존 폴 게티 3세’를 풀어주게 했다.
All the Money in the World
이 사건을 바탕에 둔 영화가 올해 개봉한 ‘올 더 머니’다. 영화를 평하자면 ‘실화 그대로 살리려고만 했다’고 해야 될 것 같다. 그게 좀 아쉽다. 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재현들은 꽤나 디테일하다. 그런데... 그거 말고는... 음...
다른 쪽
원래는 ‘존 폴 게티’역으로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아닌 ‘케빈 스페이시’가 이 영화에 분했었으며, 본편 뿐 아니라 예고편마저 편집이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케빈 스페이시’의 아동 성추행 논란 덕분에 끝내 그의 모든 분량을 들어내고 ‘존 폴 게티’역을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대체하여 재촬영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존 폴 게티 역
사실 여기서 재편집 기간까지 생각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에 더해 급한 대타를 기용한 배우의 연기 준비, 그 이상의 문제가 있었는데 당연 그것은 ‘케빈 스페이시’가 등장한 모든 상대 배역 역시 전부 다 재촬영을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존 폴 게티’역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영화상의 한 구도를 담당하고 있는 중심인물인지라 이게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노게런티
다 찍은 영화를 새로 재촬영한다는 점은 배우들에게 있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후 스케줄 문제나 추가 출연료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추가 촬영 기간 동안 ‘미셸 윌리엄스’ 등의 대다수 배우들이 사실상 노개런티로 재촬영에 임했었다고 한다.
역시 이 ㅅㄲ는 다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마크 월버그’만은 기어이 혼자 150만 달러를 더 받아냈다고 했다. 150만 달러를 더 안 내주면 영화에 등장한 자신의 배역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말한 증언마저 나왔다고 하니 이건 뭐...
이에 ‘마크 월버그’는 재계약 문제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그게 해명이냐?)
진짜 이 ㅅㄲ는 참 한결같은 것이 어쩜 이리 변함이 없을까.
여하튼
뭐 여하튼 여기서 감독 ‘리들리 스콧’의 역량이 나타났다. ‘리들리 스콧’은 재촬영 비용이 250만 달러이며(마크 월버그 추가 출연료만 150만 달러라며?), 배우들과 함께하는 신은 특수효과 삽입보다 쉬웠고 단 2주간의 재촬영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역시나 배역을 갈아치운 재촬영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호평을 받았고,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투입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후보에 선정되고 말았다.
현실은?
영화는 그렇다 치고 그 후의 현실은 어찌 되었을까?
결국 납치범중 대부분은 체포되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은 9명 중 단 두 명뿐이었다고 한다.
납치사건 이후 충격을 받은 ‘존 폴 게티 3세’는 마약과 알코올에 찌들어 살게 되었고, 그로인해 20세 초에 이미 뇌졸중, 간부전, 사지마비 및 부분 시력 상실증을 앓게 되었다고 전해졌다. 첨단 의료기술이 갖춰진 그의 집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보낸 ‘존 폴 게티 3세’는 2011년 54세의 나이로 런던 북부의 개인 저택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의 제목 처럼 이 '세상의 모든 돈'이라...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뒤늦게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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