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과 남이장군

2017. 12. 11. 14:40Culture/Theate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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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과 남이장군

 

반역 

 

반역에 성공한 자는 또 다른 반역을 가장 두려워하는 법이다. 무엇이든 한번 해 본 사람은 그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누구 보다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역에 성공한 자 일수록 의심이 많아지고 경계가 심해지게 된다. 이는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며 조선 시대 세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훈구공신들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해 왕실 종친들과 젊은 인재들을 통해 이들을 견제하려 했다. 그때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여기서 말 할 바로 그 남이였던 것이다.

 

네비게이션 검색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한강변로에 위치한 남이섬(명칭 검색은 남이섬 주차장, 남이섬 매표소).

 

이곳의 운영주체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아니고 주식회사 남이섬, 그냥 사기업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남이섬은 절대 아니올시다 라는 말을 먼저 해둔다. 무슨 100?이라는 시덥지도 않은 저딴 말을 보노라면 정말 한국에는 가볼만한 데가 그렇게 없나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런데 남이는 누구?

 

남이는 배경으로 치면 의산군 남휘와 태종의 딸 정선공주의 손자로 태어난 태종의 외증손자였고, 실력으로 치면 문과는 40명을 뽑을 때에 무과는 단 4명을 뽑았음에도 이 무과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세조의 눈에 들었던 '남이'었지만 단순히 배경만가지고 출세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 인재였던 셈이다.

 

그 후 함경도 일대에서 터진 이시애의 난에 도총사였던 왕실 종친 '이준'을 따라가 3개월 만에 난을 진압하는 등, 요동의 건주여진 토벌에 '강순'과 함께 출전해 공을 세운다.

 

뭐라고? 병조판서?

 

그리하여 결국 1468, 27세란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조선사에 이례 없는 승진을 하게 된 인물로 남게 되었다. 쉽게 말해 27살 먹은 새파란 젊은이가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덜컥하고 앉게 됐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사실 그 보다 더했지만... 병판은 세조 때에 6조 중에 두 번째 서열에 위치했다.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판-병판 순이니까 조선 서열 랭킹 6위라는 말인데... 그가 방년 27세란 말이다)

 

 

입장료

 

남이섬 입장료는 1만원, 고생 및 70세 이상 및 국가유공자와 외국인 관광객은 8000, 초등학생 이하는 4000원이며 단체 할인도 있다. 입장 요금에는 왕복 뱃삯도 포함되어 있다. 남이섬 앞 주차장은 이용 시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4000원이다.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서 밥을 먹으려 한다면, 주변 식당에서는 자신들의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서비스 해주고 있으니 이점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배를 타고

 

남이섬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오전 730분부터 저녁 940분까지 배를 운항한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수시로(10~20) 운항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고. 거기서 듣기에는 저녁 6시 이후부터 30분 간격, 이전에는 15분 간격이라고 했다.

 

배를 타보면 남이섬까지는 약 4~5분 정도 걸린다. 이 자체로 또 하나의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면도 있고. 허나 출발해서 좀 가나 싶은 느낌이 들면 금방 남이섬 선착장이 눈에 보이고 이내 도착해서 벌써?” 라고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오게 된다.

 

 

다른 수단

 

다른 이동방편으로 짚 와이어라는 새로운 이동수단이자 즐길 거리가 여기에 있는데 80m의 높이의 타워에서 남이섬까지 하늘에서 대롱대롱 와이어를 타고 남이섬으로 1분 만에 주파하는 엄청난 (무서운) 이동 수단이다. 이 짚 와이어는 남이섬 방향과 자라섬 방향이 있으며, 섬에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방향은 없다고 한다. 가격은 38,000원이라는데 개인적으로 자라섬 방향은 뭘까 싶다. 자라섬으로 가진다고??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여하튼 거기서 보니 운행을 하는 건가 안하는 건가도 모르겠던만. 솔직히 여기에 흥미가 땡기기는 했다. 비록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라도 말이다. 물론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는 제쳐두고 말이다.

 

 

한편

 

27세의 병조판서 '남이'는 '세조'의 최측근이었지만 뒤를 이은 '예종'에 의해 1년도 채 안되어 해임되고 만다. 그 이유란 '남이'가 처신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예종'에게 제대로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종'은 원래 '남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예에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할 뿐 아니라 아버지 '세조'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던 그에 비하면, 자신은 정사 처리에도 능하지 않았으며 '세조'의 신뢰도 두텁지 않았다. '예종'은 그 때문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사실 '남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드센 성격이라서 적이 많았다. '세조'가 살아있던 당시에도 자신과 함께 전공을 세운 종친 구성군 '이준'이 자신을 제치고 영의정에 오르자 분을 참지 못하여 충돌했고, '한명회', '신숙주' 등 조정의 훈구세력들에 대한 불만 역시 거침이 없었다.

 

실수

 

하지만 훈구 대신들의 나이를 볼 때, 그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몇 년 정도만 더 기다리기만 해도 되었을 것을 안타깝게도 '남이'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참을성이 없었다. 원래 적이었던 '한명회' 등은 그렇다 쳐도, 같이 '이시애의 난'을 진압했던 '이준' 등을 한 편으로 삼지 못하고 등진 것이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지 않았나 생각 든다.

 

결국

 

결국 위기에 봉착 했을 때에 자신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모함일지라도 아무도 '남이'의 편을 들어 해명하거나 변명해주는 자가 없었다. 그만큼 그는 완전한 혼자였던 것이다. (그나마 그를 변호하던 '조숙'은 남이와 함께 처형당했다)

 

유자광의 모함

 

'유자광'은 서얼 출신이며 '남이'와 마찬가지로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워 등용된 인물인데, 모사에 능하고 계략에 뛰어난 자였다. 그런데 자신과 함께 공을 세운 '남이'가 '세조'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을 시기하고 있다가 마침 '남이'가 병판에서 밀려나자 그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계획을 세웠다라고 책에는 쓰여 있는 데 개인적인 생각에 그건 아닌 것 같다.

 

'유자광'은 단순히 시기를 잘 읽고, 줄을 잘 타는 사람으로 보인다. '남이'를 총애하던 '세조'가 죽고 그를 시기하던 '한명회', '신숙주' 등의 훈구세력을 '예조'가 감당할 수 없어 보였으니, '이준', '남이', '강순' 등과 같은 '신공신 세력'에 명운을 함께하던 '유자광'은 이 때에 이미 위기를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때에도 멍청한 '신공신 세력'은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는 판국이었으며 '예조'는 '이준'을 포용하려고 했다쳐도, '남이'는 눈에 가시였던 것이니 이미 여기서 할 말은 다했다.

 

결국 유자광은 엄친아 '남이'와 사이가 안 좋거나 이를 시기해서 모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새로운 줄을 타기위한 방편으로 배신을 한 것이 아니냐는 개인적인 생각인 것이다.

 

 

고문 

 

'유자광'의 모함으로 '남이'는 모진 국문을 당했는데 그때 얼마나 고문이 심했는지 다리가 부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에 '남이'는 거열형을 받게 된다. 본부인 권씨는 요절했음으로 재혼한 부인과 첩 2명이 더 있었는데, 재혼한 부인은 후일 그가 처형될 때 함께 처형되었고 두 명의 첩은 남이의 옥사 직후 노비로 끌려갔다고 전한다.

 

더 무서운 것은 '남이'의 모친이 능지처참에 처해졌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역적의 가족이라 연좌제가 있던 시절이라 하더라도 여자들은 노비가 되거나 심해도 교형 정도였고, 능지는 꽤나 심한 처사였다. (능지형은 중국에서도 함부로 내릴 수 없어 황제의 허가가 필요 했다. 게다가 능지를 집행하는 자는 형이 끝나기 전에 죄인이 죽어 버리면 그도 같이 죽임을 당했다. 또한 조선의 역사상으로 봐도 능지형을 당한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능지처참이란 말은 사실 거열형을 잘못 알고 말하는 것이다)

 

표면상 죄목은 '세조' 상중에 고기를 먹은 것과 특히 아들 '남이'와의 근친상간(?)이란 죄목인데, 특이 이 부분은 말도 안돼 보인다. 조선 시대 땐 역적이나 그에 준하는 미움을 받았던 인물들에게 '강상'을 범하는 혐의를 씌워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전례가 있었고 '남이'와 그 모친 역시 그런 대상으로 낙인 찍혀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강상의 법도를 주장하며 고결함을 뽐냈던 유생들에게도 근친이나 불륜이란 소재는 꽤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성리학? 유생? 좋아하네...호박씨 까는 거지 뭐) 허나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남이'와 같이 죽임을 당한 모친이 사실 생모가 아니라는 설도 있으니.

 

 

무덤 

 

웃긴 건 남이섬을 '남이'가 유배 뒤 처형된 곳이나 무덤이 있는 섬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잘못된 정보다. 과거 남이섬은 '남이' 장군 집안 소유의 토지 중 일부였고 그가 어릴 적에 이 곳에서 거닐며 뛰어 놀았던 곳이라고 한다.

 

사실 '남이'는 수도 한양에서 죽었으며 시신은 버려졌다가 외가 친척 누군가에 의해 경기도 화성에 거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이섬의 가묘는 역모죄로 처형당한 시체를 함부로 거둘 수 없어 형식적으로나마 죽은 넋을 기리기 위해 외진 곳에 남몰래 잠시 잠깐 만들어 놓은 묘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

 

사람들은 '남이'가 욕을 먹고 있는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일부러 영의정 '강순'을 역모죄에 끌어 들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도 당연 '남이'의 모함이었다. 그런데 자신도 모함을 당해 험한 고문을 겪고 있는 마당에,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이를 다시 모함해 그 고통에 끌어들이려 하다니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점이 아이러니하다. '강순'은 이 때에 이미 70이 넘은 노인이었고 모진 고문을 견뎌 낼 상태도 아니었다. 알고 보면 '강순'은 이시애의 난에서 '남이'와 함께 동락한 사이였으며 '이준'과 '남이'가 이시애의 난에서 사사건건 서로 의견이 충돌했을 때에도 '강순'은 그래도 '남이'의 선에서 있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랬다면 이 둘의 관계는 참 미스테리한 부분인 것 같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리라

 

...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리오

 

 

남아 20세에 뭐라고? 

 

위와 같은 '남이'의 유명한 시가 있다. 이 시를 보면 '남이'가 과연 어떠한 성품을 지녔으리라 충분이 짐작되고도 남는 것 같다.

 

여하튼 이런 성격에 엄친아적인 능력치와 그에 못지않은 전과를 가지고 한창 젊은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하직 했으니, 현재 우리나라에 '남이' 장군에 대한 전설이 아직 남아 내려오고 있는 그 이유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니 '아기장수 설화'와 같은 이야기가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죽은 '남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되어 현대에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같은 이유에서 '남이' 장군은 우상으로 받아져 무당년들이 섬기는 장군신 중 하나로 남아있어 오게 된 것이다.

 

 

한류한류

 

남이섬은 연간 외국인 관광객 130만명을 포함, 전체 관광객 330만명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보면 외국인이 참 많이 보인다. 이유인 즉,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히트 친 겨울 연가의 주요 배경으로 남이섬이 나온 것을 비롯해, 한국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의 한류 팬들과 다른 아시아 지역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벤트 

 

남이섬 이벤트로 5월에는 남이섬 '세계 책나라 축제'와 일러스트 공모전인 '나미 콩쿠르'가 열린다고 한다. 가보자 한다면 타이밍을 이 때로 잡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니라서 뒤늦게 아쉬웠다.

 

도서관이 좋다드라

 

섬 중앙에는 도서관이 있는데 건물 규모가 크다고 한다. 2층인 도서관엔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어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는 말도 있다. 도서관 내에 작은 미끄럼틀이 있어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또한 2층엔 나미 콩쿠르 수상작이 전시되어있기도 한다는데, 가고서도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미친다 ㅎㅎㅎ

 

아니, 진짜 있는게 맞아?

 

칙칙폭폭

 

섬의 주요동선을 따라 기찻길이 나있는데 이곳에서 운행하는 '나눔 열차'를 3000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허나 운행 잘 안하는 듯 보였다. 타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걸어 다니려는 사람이 더 많을 터이니 이해는 간다. 자전거나 전동 씽씽이를 빌려 주기도 하는 듯 보였는데 대충 듣자하니 값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여기 가서까지 자전거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가보면 알게 되겠지만 생각보다 섬이 작고 그렇게 대단한 곳도 딱히 없기 때문에 하루 정도면 섬 전체를 관람할 수 있다. 하루? 아니다 몇 시간만 걸어도 충분했다.

 

 

토깽이

 

여긴 토끼도 방목을 한다. 신기하다. 그 토끼들은 사람이 옆에 와도 도망을 안 간다. 그리고 울타리에 갇힌 타조가 있는데 깡타다시 말해 깡패타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놈인데, 원래는 섬 내서 토끼처럼 방목했었지만 관광객들의 도시락을 뺏어먹는 등 소란을 피워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됐다고 하는... 웃지 못 할 슬픈 에피소드를 간직한 녀석이었다.

 

호텔?

 

남이섬 구석에 보면 팬션 같은 것들이 늘어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주말 가격(2인 기준)119,000원이고 평일 가격은 97,000원 이라고 한다. 그 앞 섬 중간쯤에 정관루라는 호텔 개념의 숙박소가 있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 3~6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또한 호텔 옆에 수영장이 있는데,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투숙객은 할인받은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내가 간 때는 가을 날씨가 쌀쌀히 추워 질 때라 낙엽 쌓이고 더러워 보이는 텅 빈 풀장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비닐이든 뭐라도 좀 덮어 놓지 그랬냐...

 

 

복불복이냐

 

또 봄에서 가을까지 날씨 좋은 날에는 풀사이드 바베큐가 열린다고 한다. 내가 간 때도 날씨는 좋았는데? 이런 볼거리가 사시사철 상시 열려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때그때 복불복인 양 계절과 시간 때 그리고 날씨에 따라 볼 수 있는 여러 것들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러한 사정들의 변동으로 그때그때 입장료 만원의 값어치는 달라질 듯 보인다. 내가 갔을 때의 값어치는 5천원도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논란

 

남이섬에 대한 세간의 관심사는 이 곳 소유자에게 있는 친일파 논란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민영휘'는 명성황후의 친척 조카이자 일제시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특별법 제정 때 그 대상자로 지목되었었다고 한다. 허나 이미 재산의 상당수가 주식회사 남이섬 등으로 법인화 되어버려서 개인명의 재산과 법인명의 재산을 물리적으로 구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국가에서 70억 원 정도만 환수되었다고.

 

여하튼 그렇다 아니다 말도 많고 서로 갑론을박 대립각을 세우고들 있지만 나는 그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인터넷상으로 잘못 말하면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다고 남이섬 측에서 으름장을 놓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아래가 그 가계도다. 스스로 판단하길 바란다

 

1. 민영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매국노이다. 조선의 국권피탈에 앞장서 1910년 일본으로부터 자작 직위를 수여받았다. 일제강점기동안 자신이 모은 재물로 갑부가 되어 부귀를 누리다가 1935년에 사망했다]

 

2. 민천식 [민영휘의 서자. 젊은 나이에 요절]

 

3. 민병도 [민영휘의 손자. 민천식의 양자. 남이섬의 설립자]

 

4. 민병도의 후손 [지금 남이섬의 주주. 사내 이사]

 

 

다른 건 몰라도

 

여하튼 23일 간의 여행 중에 춘천과 가평의 여러 곳을 다녀봤으나 가장 후회가 심했던 곳, 친일파고 나발이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저 입장료조차 너무나 아까웠던 곳이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곳, 남이섬이었다는 것만은 엄연한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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